‘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더라’는 말이 있다. ‘기우’일 줄 알았는데, ‘실제’가 됐다. ‘설마가 사람 잡은 꼴’이다’. 제 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얘기다. 좀 더 자세하게는 ‘정부조직개편(안)’ 얘기다. ‘선무당 사람 잡는다’는 혹자 혹평 속에서 곳곳 ‘저항’을 무릅쓰고 인수위는 개편안을 국회 제출했다. ‘설 이전 통과’를 희망한다고 속내를 내놓다 대통합민주신당 젊은 386 국회의원에게 면박만 당했다.

먼저, 이를 둘러싼 인수위 행태가 뒷말을 낳고 있다. 스스로 마련한 ‘안’에 대한 자부심이 곧 독毒이다. 이를 반대하는 모든 목소리들은 ‘부처 이기주의’로 치부된다. 바꾸긴 했다. 당초 ‘인재과학부’는 “교육계 의견을 수렴” ‘교육과학부’로 그새 고쳤다. 제 주장과 다른 부분도 없지 않단다. 지난달 24일자 SBS 메인 뉴스에 따르면, 당초 설명과 달리 국회 제출한 안에는 국정홍보처 ‘모든’ 업무가 문화부에 이관되는 형태로 담겼다.

인수위 조직개편안에 따르면 폐지 대상은 5개 부처다.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 통일부, 여성가족부, 해양수산부가 그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비호감’만 대상으로 했다는 설도 심심찮다. 대표적인 게 통일부. 지난 10년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엔 눈엣가시였으리란 것이다. 해수부는 ‘노무현 산실’이고, 정통부는 ‘노무현 치적 1순위’였기 때문이라는 사시斜視도 껴든다. “여성부는 여성권력을 주장하는 사람들만의 부서”라는 당선자 발언도 도마에 올랐다. 통일부를 폐지 대상에 포함시킨 게 예비야당과 ‘딜’ 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엔 놀랍다.

하긴, 고교 영어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최종목표가 “기러기 아빠 퇴출”(인수위 대변인)이라는 인수위 수준이니 오죽할까 싶긴 하다. 8000여명 영어교사 재교육은 차치하고, 고작 영어회화 때문 애들을 외국에 보낸다는 인식 정도라면, 말 다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는 ‘IT를 중시해달라’고 주문한 지난달 편집장 칼럼(‘차기정부의 몫’)이 무위에 그친 자괴 때문이다. ‘잘 나가는 분야뿐 아니라, 소외된 구석구석 IT를 살펴달라’는 게 주장의 핵이었다. 정통부 해체로 인수위가 답할 줄은 몰랐다.

조직개편에 따르면 정보통신부는 우정국 시절부터 120여년의 역사를 접는다. 13부2처 어디에도 ‘정보통신’은 없다. 대통령 직속으로 설립한다는 ‘방송통신위원회’에 그나마 ‘통신’이 걸려있다. ‘몸통’은 생뚱맞은 ‘지식경제부’로 흡수된다. 일부는 방통특위로 가고, 일부는 문화부로, 일부는 행정안전부로 간다. 공중분해, 지난 10년간 ‘IT보국報國’의 결과치곤 허망할 만도 하다.

정통부 해체가 “실물경제 융합과 신산업 출현 등 여건변화에 유연히 대응토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인수위 설명이다. IT정책도 그대로 가고, 전자정부·정보보호, 콘텐츠 모두 ‘시너지’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정보통신부를 비롯, IT종사자들의 반대 논리는 그러나 분명하다. ‘마지막 정통부 장관’ 유영환 장관은 “IT산업은 여러 분야간 유기적 결합으로 움직여야 성장하는 산업”이라고 토로했다. “IT전담부처가 세계적 대세임에도 인수위가 거꾸로 간다”(대통합민주신당 토론자료), “선순환 구조에 역행하는 섣부른 행정가의 정책”(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이란 목소리도 나왔다.

물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흑묘백묘론’도 맞다. 문제는 부처이름에서 ‘정보통신’을 뗄 때 진지한 성찰(이른바 ‘숙고熟考’)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주변, 돌아가는 얘길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우려에 또 우려를 더한다. 결국 ‘대운하’만 남는 것 아닌가, 적이 걱정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