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과 소통' 명분 불구 "사실상 사전선거운동" 눈총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요즘 전국의 자치단체장들이 각종 행사에 얼굴을 내미느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하루에 10~20개나 되는 행사에 참석하는 강행군을 하는가 하면 부단체장이 참석하기로 결정된 행사에 단체장이 직접 참석하는 경우도 있다.

지역민과 소통하려는 의지로 읽힐 수도 있지만 현직 프리미엄을 활용한 사실상의 사전 선거운동으로 보는 곱지 않는 시선도 적지 않다.

윤순영 대구 중구청장은 지난 9월부터 한 달에 2∼3차례 '주민과 대화의 날' 행사를 하고 있다.

관내 12개 동을 차례로 돌며 주민들의 애로사항 등을 청취하고 개선점을 제시한다.

구청장이 주민들 집을 일일이 방문하는 대신에 특정일에 주민들을 동사무소에 모이도록 했다.

현재까지 6개 동 주민들과 만났고 다음 달까지 나머지 6개 동을 순시하는 일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오규석 부산 기장군수는 매일 오전 5시부터 지역 재래시장과 공사현장을 둘러보며 민심을 챙긴다.

오후에는 퇴근 시간인 6시부터 10시까지 집무실에서 민원을 직접 접수하는 '야간 군수실'을 운영한다.

오 군수는 야간 군수실을 주말에도 쉬지 않고 계속 열고 크고 작은 지역 행사와 대규모 집회 현장에도 빼놓지 않고 참석하는 등 주민과의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우근민 제주지사는 최근 들어 민생 현장을 살핀다며 경로당과 전통시장 오일장 등 지역 곳곳을 누비고 있다.

우 지사는 이달 1일 제주 수산물 구매 외식업체 대표 간담회를 시작으로 8일 제주축협 창립 기념식, 16일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이 감귤 선과장, 21일 제주시 조천면 함덕리 일구경로당, 구좌읍 평대리 당근 가뭄 피해 지역, 23일 서귀포시 중문오일장과 중문게이트볼장, 서귀포시 서홍동 홍로토종닭농장을 방문했다.

이런 일정은 사실상 공식 업무와 큰 연관이 없어 사실상 노골적인 선거운동과 다름없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

김연식 태백시장은 시·도 경계를 넘나드는 장거리 이동도 개의치 않는다.

김 시장은 지난 22일 오전 11시 충북 제천시청 소회의실에서 열린 동서고속도로 추진 공동 건의문 서명식에 갔다가 바로 돌아와 오후 1시 30분 태백 고원체육관에서 열린 강원도 노인복지협회 종합예술제에 참석했다.

지난 26일에는 오전 11시 경북 포항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30회 재포항 강원도민 한마음 축제에 참석했고 오후 5시 태백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했다.

울산에서는 일찌감치 울산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김두겸 남구청장이 가장 빠르고 넓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 청장은 울산에서 최대 인구가 거주하는 기초단체장으로서 평소에도 활동량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남구지역의 공식적인 일정 외에도 울산 전역의 주요 행사장을 찾아 울산의 대표적인 일꾼이자 리더로서 입지 다지기에 분주하다.

대규모 종교시설이 주최한 행사에 김 청장이 등장했다는 목격담도 많다.

3선 출마를 저울질하는 김완주 전북도지사도 최근 행사 참석 빈도가 부쩍 늘었다.

김 지사는 행정부지사나 정무부지사가 참석하는 것으로 결정된 외부 행사 당일에 자신이 직접 참석을 결정하는 등 적극적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처럼 이미 부지사가 참석하기로 한 행사를 김 지사가 대신 챙기는 경우가 이달에만 5차례에 달했다.

지난 4월 재선거에서 당선된 임창호 경남 함양군수는 당선 1년 2개월 만에 다시 선거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군청 내부행사는 부군수에게 대체로 맡기고 자신은 군민에게 얼굴을 알릴 수 있는 외부 행사에 주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 군수는 지난주에 잡힌 40여 개의 일정 중 자체행사를 제외한 20여개의 외부 행사에 대부분 참석했다.

새누리당의 텃밭인 경남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김맹곤 김해시장은 이미 11월 초부터 촘촘한 일정을 짜뒀다.

오는 2일에는 회현동 가야유적지 탐방 걷기대회, 김해시지역 아동센터협의회 체육대회, 진영단감제 개막식을 차례로 찾아 얼굴 알리기에 주력한다.

다음날에도 불암동민 단합 등반대회, 부원동민 체육대회, 김해시장기 야구대회, 동상동민 체육대회 등 '가을 특수'에 올인한다.

단체장의 행사 참석 일정이 부쩍 늘자 수행비서나 일선 공무원들이 상당한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단체장이 외부행사에 가면 차량 운전기사, 비서실장, 수행비서 등 최소 3명이 동행한다.

단체장은 축사를 하거나 악수만 하면 그만이지만 이들은 동선은 물론 촘촘한 일정을 조율해야 한다.

단체장의 주요 발언이나 민원인의 주요 건의사항이 있으면 이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김영만 충북 옥천군수는 요즘 하루에 15∼20건의 일정을 소화하는데 온종일 유권자와 접촉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4일에는 5개 공식 행사에 참석했고 출근 전에는 지역에 견학 온 5개 팀을 배웅했다.

김 군수의 비서진은 "하루 10건이 넘는 일정을 소화하느라고 식사를 거를 정도지만 모임마다 군수가 참석하기를 원해 자리를 줄이기도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비서진 외에 전국 지자체 대부분의 사진담당 주무관은 주로 개인 차량으로 이동하는데 유류비 지원이 제대로 되는 곳은 거의 없다.
선거를 앞둔데다 외부행사가 부쩍 많아지는 가을이다 보니 주말이 오는 게 두렵다고 말하는 공무원도 적지 않다.

경남지역 한 사진담당 공무원은 "선거를 앞둔 이맘때만 너무 정신이 없다"며 "주말에는 아예 개인 시간을 포기하고 출근할 준비를 한다"고 토로했다.

송광태 창원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30일 "정책개발이나 행정조직 관리 등 본연의 임무는 뒷전으로 하고 '현직 프리미엄'을 활용한 유권자 관리에 치중하면 행정공백 등 문제가 생긴다"며 "단체장에게 집중된 과도한 권한을 나누고 내부를 챙기지 못한 문제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 추궁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도지사, 교육감, 시·도의원, 기초단체장, 기초의원을 뽑는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2014년 6월 4일 수요일에 실시한다.

후보 등록은 5월 15일과 16일 이틀 동안이다. 공식 선거 운동 기간은 13일인데 5월 22일부터 6월 3일 자정까지 할 수 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