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채 KT 회장이 결국 회장직에서 물러남에 따라 그동안 우려되던 KT의 'CEO 리스크'가 현실로 다가오게 됐다.

KT는 12일 이사회에서 표현명 T&C(텔레콤컨버전스) 부문 사장을 대표이사 회장 직무대행으로 선임해 새 CEO 선임 전의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기로 했지만 당분간 경영상의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부에서는 '이석채의 사람'으로 분류되는 일부 임원진이 대거 교체되며 대규모 인사태풍이 불어닥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업계와 시민사회에서는 KT 회장직을 놓고 매번 되풀이되고 있는 정부의 '자기사람 심기' 관행을 이번 기회에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KT 이사회는 이날 다음 주 초 CEO추천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차기 회장 선임을 앞당겨 경영 공백을 최대한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예상 외로 차기 CEO 선임까지 기간이 길지 않을 수는 있지만 KT가 직면한 현안이 산적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CEO 부재에 따른 타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KT는 지난 3분기 실적에서 이동통신사 중 유일하게 매출 하락을 기록했다. 매출이 작년 동기보다 7.3% 줄었으며 당기순이익은 63.1%나 감소했다. 무선 가입자당 평균매출(ARPU)도 유일하게 감소했으며 무선 가입자수는 3분기에만 11만4천명이나 줄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KT는 LTE 가입자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처지에 놓였지만 새 CEO 선임 전 과도기 체제에서 시시각각 급변하는 통신시장에서 얼마만큼 민첩하게 대응할지는 미지수다.

KT는 특히 3차례의 압수수색이 말해주듯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검찰의 수사로 인해 회사 운영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CEO리스크까지 겹치는 난국을 맞고 있다.

이사회가 이날 "KT가 하루빨리 정상궤도에 올라 안정적인 고객서비스 제공 및 글로벌 시장 진출에 전념할 수 있도록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수사를 마무리해 줄 것"을 검찰에 촉구한 점은 KT의 위기감을 그대로 반영해주고 있다.

KT는 또 무궁화위성 불법 매각 논란과 관련해 정부로 부터 과태료 부과 등 각종 징계를 받을 상황에 직면해 있고, 정치권과 유료방송업계에서 제기되는 '시청률합산 규제'나 방송통신위원회의 불법 보조금 조사도 적극 방어해야 할 처지에 있다. 또 르완다에서 닻을 올린 아프리카 진출 사업도 모범사례로 발전시켜야 한다.

회사 내부적으로는 장기집권하던 이 회장이 사퇴한 만큼 연쇄적인 인사 폭풍이 예상된다.

우선 이 회장의 측근으로 이른바 '낙하산 인사'로 분류되던 임원 30여명 중 상당수는 교체를 피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KT의 '낙하산 인사'라며 36명의 임원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전임 남중수 사장이 퇴임하면서 그의 재임시절 영입인사들이 대부분 퇴사한 것을 고려하면 역시 이 회장의 영입인사들도 과거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구조조정 논의가 회사 내부에서 불붙을 가능성도 있다. KT는 경쟁사에 비해 인건비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 회사의 임원수는 130여명이나 된다.

이 회장 역시 지난 3일 사의표명 후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올해안에 경쟁사와의 인건비 격차를 1조까지 줄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 임원의 수를 20% 줄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인사 폭풍은 새로운 CEO가 선임된 뒤에도 다시 불어닥칠 수 있다. 새 CEO가 취임하면 대대적인 임원 인사가 다시 단행될 수 있으니 조직의 불안정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이 회장 사퇴를 계기로 KT가 100% 민간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새정권이 출범하면 기존 CEO가 물러나고 친정부 성향의 '낙하산 CEO'가 취임하는 식의 행태가 반복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KT의 주주는 국민연금공단(8.65%), NTT도코모(5.46%), 실체스터(5.01%), 미래에셋자산운용(4.99%), 우리사주조합(1.1%) 등으로 구성돼 있다. 자사주의 비중은 6.6%이며 외국인 주주는 43.9%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시민단체들 역시 CEO 선임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사회 각층의 인사들이 CEO 추천위원회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행 KT 정관에 따르면 CEO 추천위원회는 사외이사 7명 전원과 사내이사 1명으로 구성된다. CEO추천위원회가 재적위원 과반수(위원장 제외) 찬성으로 후보를 결정하면 주주총회에서 최종적으로 선임 여부가 확정된다.

KT새노조, 참여연대민생희망본부, 언론연대 등 노동·시민단체들은 12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T이사회가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밀실에서 후보추천 절차와 후보를 결정할 게 아니라 반드시 국민적 여론 수렴을 해야 한다"며 "사회 각계각층의 존경받은 인사들로 CEO 추천위원회가 구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