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이나 파이프라인, 물속, 또는 신체 내부처럼 전자기파 사용이 불가능한 극한 환경에서 문자 메시지와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최초의 분자 통신 시스템이 개발됐다고 사이언스 데일리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영국과 캐나다 과학자들은 동식물 간에 사용되는 것과 같은 분자 신호를 2진(二進)신호로 바꾸고 이를 증발된 알코올 분자로 전환하는 기술을 개발, 분자 통신의 잠재력을 입증했다고 미국 공공과학도서관 학술지 PLoS ONE에 발표했다.

곤충들이 먼 곳에 있는 상대에게 보내는 페로몬 신호 같은 분자 신호는 동식물계에서 흔히 사용되는 것이지만 지속적인 데이터 전송 방식은 아직 없었다.

연구진은 시중에서 구입한 100달러 안팎의 전자기기를 이용해 캐나다 국가의 첫 소절 '오 캐나다'를 신호로 바꿔 송수신하는 분자 신호 시스템을 처음 선보였다.

이들은 옥외에서 보드카를 이용해 몇 미터 떨어진 곳까지 분자 신호를 보내고 이를 문자로 해독하는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알코올 분자의 농도를 조절해 한 번 뿌리면 1비트, 뿌리지 않으면 0비트가 되게 해 알파벳을 해독하는 방식으로 순전히 분자 통신만으로 세계 최초의 문자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향수를 이용해 상세한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은 첩보물에나 나올 법한 얘기 같지만 알고 보면 믿을 수 없을 만큼 간단하다"면서 "화학물질을 사용한 단거리 신호 기술은 이전에도 개발된 적이 있지만 우리의 연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몇 미터 떨어진 곳까지 일반 문자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현대의 환경에서 우리의 통신 방식이 방대한 데이터를 송수신하는 전자기파를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기존 통신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특수 영역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터널이나 파이프라인 내부, 또는 깊은 지하 구조에서는 화학 신호가 구조물의 건강이나 상황을 모니터한 센서의 자료를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하수 시스템이나 석유 시추시설 같은 곳의 무선 모니터링에 이런 통신 방식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를 통해 최근 런던의 하수도 망을 막고 있던 버스 크기의 오물 덩어리나 2010년 멕시코만 딥워터 호라이즌 석유 유출 같은 사고 요인들을 미리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런 시스템을 나노 수준으로 적용하면 인체 장기 내부를 들여다보는 체내 삽입용 센서나 암세포에 약물을 전달하는 것 같은 구체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미니 로봇의 통신에도 활용될 수 있다고 연구진은 강조했다.

이들은 전자기 신호를 이용하는 기존 통신 방식에는 신호의 파장 대 안테나 크기 비례 같은 제약이 따르지만 분자를 이용하는 화학 통신은 여기서 자유로울 뿐 아니라 에너지 소모가 거의 없고 생체에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새로 개발한 분자 통신을 광범위한 과학 분야로 확대하고 상품을 시판하기 위한 회사를 설립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