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도시'를 외치며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인권조례를 제정했지만 정작 조례 내용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중섭 경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24일부터 이틀간 충청남도 예산 리솜스파캐슬에서 열리는 '한국인권회의'에 참석해 이러한 내용을 담은 '인권조례 현황과 과제'를 발표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전국 245개 광역 및 기초 지자체 중 84곳에 인권조례가 제정돼있다. 17개 광역지자체는 인천광역시를 제외한 16곳에 인권조례가 제정됐다.

인권조례를 제정한 16개 광역 지자체 중 인권조례 실행의 핵심인 인권위원회를 구성한 곳은 11곳뿐이다. 제주, 대구, 경기, 경북, 경남 등은 인권위원회를 구성하지 않았다.

지자체 인권위원회는 인권 침해를 구제하거나 의결하는 권한이 없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인권 관련 정책· 법규·사업을 심의하거나 자문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 바탕으로 지역의 인권 문제를 논의하는 공론장 역할을 한다.

2010년 2월 인권조례를 제정한 경남은 아직도 인권위원회를 구성하지 않았고, 전북은 2010년 인권조례를 제정하며 6개월 이내 인권위원회 구성을 규정했음에도 지난해 3월에야 비로소 구성했다.

인권위원회가 구성된 지자체에서도 위원회가 유명무실하게 운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서울에서 지자체 인권위원회가 10번 회의를 한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지역에서는 1∼4차례 회의를 하는 데 그쳤다.

특히 서울과 광주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인권 업무를 전담하는 부서나 전담 직원이 없는 실정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행정 부서나 감사관실, 법무관실에서 인권 업무를 함께 맡고 있다.

김 교수는 지자체들이 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한 실질적 정책과 사업을 제도적으로 정착하거나 전문 인력의 주도 아래 수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조례의 주요 사항인 인권 교육은 인권의 중요성을 알린다는 등 측면에서 중요하지만, 대다수 지자체에서 실적 위주로 접근하고 있다.

인권조례의 인권교육 실시 의무조항에 '1년에 몇 회 할 것'만 규정돼 있어 지자체들이 대상자 구분 없이 대규모 강당에서 일방적 주입식 강연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대다수 지자체에서 인권조례에 규정이 있음에도 인권 정책 과제와 목표를 설정하고 추진방안을 제시하는 인권기본계획을 수립하지 않았다.

김 교수는 인권조례를 제대로 지키기 위해서는 인권과 관련된 지자체 행정을 감시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례를 공포하고 시행하는 것은 지자체 단체장의 권한이기 때문에 지방의회의 사무 감사 권한을 활용, 인권조례 시행 과정이나 결과를 감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인권조례는 인권헌장이나 인권선언과 같은 취지를 밝히는 문건이 아니라 실질적인 인권 증진 방안을 실행하는 법적 장치"라며 "인권조례를 지켜야 인권 친화적인 지역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