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자치부가 주민참여 예산위원회의 위원 수를 15인 이내로 제한하고 나서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인구 및 예산 규모가 큰 지자체에서는 이미 많게는 수백명의 위원을 위촉해 수백건에 달하는 주민제안사업 에산을 심의하고 있는데, 이를 15인 이내로 일률적으로 줄이면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제대로 시행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행자부는 지자체의 반발이 커지자 위원 수 제한을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행자부는 지난달 21일 지방자치단체장 소속으로 주민참여 예산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지방재정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지방자치단체 예산 편성에 주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시민의 참여로 재정운영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실제 주민이 원하는 재정수요를 반영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국내에서는 시민사회단체 주도로 2000년대 초반부터 일부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시행됐으며, 2011년 지방재정법 개정을 통해 법제화됐다.

전국 지자체마다 자체 조례를 통해 주민참여예산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경기 성남시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조례제정을 하지 않은 곳이지만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시행하고 있다. 성남시도 이번에 조례제정을 추진 중이다.

행자부가 내실 있는 주민참여예산제도 운용을 위해 주민참여예산위원회의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려고 위원회 설치 의무화(제39조2) 내용을 이번에 신설했다.

주민참여예산위원회는 민간위원을 주축으로 공무원이 포함돼 주민이 실생활에서 필요한 사업에 지자체 예산을 사용할 있도록 제안하고 심의하는 역할을 한다.

인구와 예산 범위 등에 따라 지자체별로 상황에 맞게 수십에서 수백 명의 위원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행자부가 이번 지방재정법 개정안에 시군 사정에 상관없이 참여예산위의 위원 수를 공무원을 포함해 15인 이내로 제한하면서 지자체의 반발을 사고 있다.

행자부는 개정안에서 '위원회는 위원장 1명을 포함한 15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하며, 위원은 민간위원과 공무원으로 임명·위촉하되 공무원이 전체 위원의 4분의 1 이하로 구성'하도록 명기했다.

문제는 전국 지자체가 이미 15명보다 훨씬 많은 위원으로 주민참여예산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어 개정안대로 하려면 전면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수원시는 이미 2009년 '수원시 주민참여 예산제 운영조례'를 제정, 2011년부터 주민참여예산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시 위원회 위원은 정원 60명 이내, 4개 구청은 각 40명 이내로 규정했다.

현재 수원시에는 시청 위원회 66명, 장안구청 33명, 권선구청 28명, 팔달구청 27명, 영통구청 32명 등 총 186명의 위원이 활동 중이다.

이들은 일반행정, 문화복지, 도시환경, 건설개발 등 4개 분과로 나뉘어 연간 800건의 주민참여예산을 심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여기에다 주민참여예산 주민홍보와 설명회 개최, 기존 추진사업에 대한 모니터링도 이들의 몫이다.

수원시 관계자는 "현재 위원 수로도 연간 800건이 넘는 안건을 심의하고 모니터링 하는 데 어려움이 많은데, 공무원을 포함해 15명 이내로 줄이라고 하면 주민참여예산 일을 제대로 하기 힘들어진다"면서 "시군의 사정에 맞게 자율적으로 위원 수를 조정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수원시는 기존처럼 지자체 조례에 따라 위원 수를 정할 수 있도록 행자부 개정안을 수정해 달라는 의견을 경기도에 제출했다.

용인시도 수원시처럼 지자체 자율에 따라 위원 수를 정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용인시는 현재 101명의 위원이 활동 중이다. 올해 접수가 끝난 내년도 주민참여예산 제안 건수는 작년(78건)보다 30건이 늘어난 108건이다.

경기도도 시군의 반대 의견을 수렴해 "현행대로 지자체가 조례에 따라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행자부에 제출했다.

이미 50명의 위원으로 주민참여예산위를 운영하는 울산시도 "시도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위원을 15명으로 제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75명의 위원을 구성하고 있는 경남도도 행자부의 관련법 개정안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경남도 예산부서 관계자는 "이미 경남도에서는 주민참여예산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고, 시군에서도 지역 실정에 맞게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정부에서 시군까지 강제적으로 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북 남원시는 "46명의 위원이 4개 분과별로 활동하고 있는데, 덕분에 예산 편성 과정이 투명해지고 주민이 실제로 원하는 사업을 발굴해 예산을 세울 수 있다"면서 "그러나 위원 수를 15명으로줄이면 분과 운영이 사실상 어려워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부족한 대로 위원회 운영에 큰 문제는 없는 만큼 행자부의 안을 따른다는 방침이다.

지자체의 반발이 커지자 행자부는 "시군 사정에 맞게 운영하도록 개정안을 수정할 예정"이라며 한발 뒤로 물러났다.

행자부 관계자는 "위원 수 제한에 대해 지자체에서 여러 가지 의견이 많이 들어와 시군의 자율에 맡기는 방향으로 수정할 계획"이라면서 "참여예산위원회 운영위와 별도로 분과위 위원 수를 따로 규정하려고 했는데, 입법 예고안에 그렇게 자세히 담을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수원경실련 유병욱 부장은 "지방자치 활성화를 위한 제도 중 하나인 주민참여예산제도에 대해 행자부가 위원 수까지 제한하려는 것은 지방자치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라면서 "지역마다 현실이 다른데도 지자체 의견수렴도 없이 일방적으로 지시하듯이 법안을 개정하는 것은 지방자치를 통제하려는 의도"라고 비난했다.

그는 또 "지방재정 개편안 갈등에서 드러난 것처럼 행자부가 지방자치와 관련한 사안에 대해 지자체와 사전에 충분한 논의를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면서 "이번 건도 입법 예고하기 전에 지자체와 논의해 합리적인 합의점을 찾았어야 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