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컴퓨터 보안 '원천기술' 업체인 유명 보안기업 RSA가 '뒷문'(백도어)을 만들어 주는 대가로 미국 국가안보국(NSA)으로부터 1천만달러(106억원)를 비밀리에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고 로이터통신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뒷문'이란 전산시스템에 몰래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자가 미리 만들어 둔 우회 경로를 뜻하며, 이를 만드는 것은 범죄 행위다.

이 때문에 이번 파문은 전 세계 컴퓨터 보안업계 전반에 극심한 불신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RSA는 2000년대 중반에 암호화 소프트웨어인 'B세이프'에 '쌍대 타원 곡선 공식'이라는 방식을 기본 값으로 채택하라는 NSA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가로 돈을 받았다.

로이터는 당시의 비밀 계약에 관해 알고 있는 취재원 2명을 통해 내용과 금액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이 금액(1천만달러)이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당시 RSA의 관련 부서가 그 전년도에 올렸던 매출의 3분의 1을 넘는다는 사실을 증권당국에 제출된 서류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RSA가 NSA의 요구로 암호화 소프트웨어에 뒷문을 만들었다는 폭로는 지난 9월에 나왔으나 그 대가로 거액의 뒷돈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RSA는 컴퓨터 암호화의 근본 이론인 '공개 키 암호화'를 정립한 학자들이 1982년 창립한 업체로, 전 세계 보안 원천기술을 선도해 왔으며 2006년 EMC에 인수됐다.

문제가 된 '쌍대 타원 곡선 공식'이라는 난수 발생 방식은 채택된 지 1년도 되지 않아 보안 취약점이 지적됐으나 RSA와 미국 국립기술표준원(NIST)는 이를 계속 사용토록 했다.

보안 분야 세계 최고 권위자 중 하나인 브루스 슈나이더 하버드대 석학연구원은 이에 대해 "뒷문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슈나이더는 로이터 보도 후 정보기술(IT) 전문매체 C넷에 "이제 우리는 RSA가 뒷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나 같으면 절대로 그들(RSA)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RSA는 성명을 통해 "RSA는 항상 고객의 최상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RSA는 자사 제품에 뒷문을 설계하거나 뒷문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지 않는다. RSA 제품의 특징과 기능에 관한 결정은 우리가 내리는 것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슈나이더는 "NSA가 지금까지 딱 한 회사에만 뒷돈을 줬을 것 같으냐"고 C넷 기자에게 반문하고 "지금 문제는 누가(어떤 다른 업체가) 연루돼 있는지 우리가 모른다는 점이다. 그러니 누가 믿을만한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널리 쓰이는 암호화 도구를 만드는 업체로는 RSA 외에도 시만텍, 맥아피,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있다.

RSA는 지난 9월 자사 소프트웨어에 뒷문이 있다는 사실이 폭로된 이후에야 쌍대 타원 곡선 공식을 더 이상 사용하지 말라고 고객들에게 권고했다.

RSA와 EMC는 로이터 취재기자의 질문에 답변을 하지 않았으며, NSA는 로이터 보도에 대해 언급을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