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민석 팀장(한국무역협회 통상협력팀)

지난 2012년 태국의 한 소규모 수산업자인 ‘나롱 시푸드 컴퍼니’는 청천병력과 같은 소식을 접했다.

주로 미국에 새우를 수출하던 이 회사는 매사추세츠주 검찰로부터 갑자기 수출이 금지될 수도 있다는 통보를 받았던 것이다.

문제는 이 회사가 상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업무에 불법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시작됐다.

매사추세츠주 검찰은 이 회사가 불법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원가를 절감한 것은 불공정거래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나롱 시푸드 컴퍼니는 매사추세츠주 검찰에 합의금을 지불하고 나서야 새우 수출을 재개할 수 있었다.

이 사례는 국내외적으로 적지 않은 이슈가 됐다. 그 동안 불법 소프트웨어는 지적재산권법의 관점에서만 다뤄져 왔는데, 미국 사법당국이 경쟁법 관점에서 불법 소프트웨어를 바라보기 시작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2013년 1월에도 미국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인 카말라 해리스가 중국과 인도의 의류회사를 불공정경쟁행위(Unfair Competition Act)로 제소했다.

같은 해 4월에는 워싱턴주 검찰총장이 자신의 주법에 따라 특정 소프트웨어 기업과 브라질의 항공기 제작업체 엠브라에르(Embraer) 간의 수백만 달러의 합의를 이끌어 냈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큰 정책적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정부는 미국 제조업의 부활과 이를 통한 고용창출을 주요 정책 목표로 세워두고 있다.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 했던 기업이 그 공장을 미국으로 다시 옮겨오는 경우 폭 넓은 세제혜택을 제공하는 등 제조업 부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특히 해외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철저히 막아 자국 기업을 지원하겠다는 것이 오바마 대통령의 의지다. 외국 생산자의 불공정경쟁으로 미국 기업이 피해를 받고, 이로 인한 미국 내 일자리 감소 및 경제 침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12 년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오바마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무역단속 부서(Trade Enforcement Unit)를 설립했다. 이는 미국의 무역 상대국의 불공정 관행을 조사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연방기관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제품을 위한 새로운 시장을 열기 위해서 세계 어디든 갈 것"이라며 "미국의 경쟁자들이 규칙에 따라 행동하지 않을 때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각 주정부들도 이 같은 정책에 부응하고 있다. 미국 각주의 검찰총장들은 불법복제 소프트웨어 관련 강력한 연방정부 차원의 대응을 요구했다. 2014년 1월 현재, 불공정경쟁법(Unfair Competition Act, UCA) 관련법안은 미국 내 36개 주에서 발의됐거나 입법돼 있다.

주목할 것은 앞에서 살펴봤듯 미국이 이 같은 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전술의 하나로 소프트웨어 저작권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불법 소프트웨어 활용을 저작권법 위반뿐 아니라 불공정경쟁행위의 일환으로 정의함으로써 중국, 인도 등을 포함한 신흥 경제개발국가들의 수출 기업을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산업 세계 최강국인 미국으로서는 IT산업과 제조업을 모두 다 지원할 수 있는 일석이조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흐름이 우리나라 기업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대미(對美) 수출 기업은 1만 9125개로 전체 민간기업의 약 22%에 달한다.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SPC)에 따르면, 이들 기업 중 40%가 불법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불법 소프트웨어가 대미 수출의 큰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위험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경쟁사들이 불법 소프트웨어 문제를 통해 미국 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을 압박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최근 국내 모 전자회사의 경우에 해외 법인에 약 6개월 동안 10건 이상의 불법 소프트웨어 단속, 라이선스 현황 확인 요청 등이 있었다. 만약 이 조사에서 불법 소프트웨어가 발견됐다면, 이 전자업체는 미국 수출에 지장을 받을 수도 있었다.

이처럼 미국에 진출했거나 수출을 추진하는 국내 기업들이 불법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다 적발되면 각 주별로 불공정경쟁법에 의거해 최고 25만달러(약 3억원), 불법 소프트웨어의 소매가격 이상의 손해배상금이 부과되거나 제품의 수출?판매 금지를 당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 입장에서 6번째 큰 교역국이지만, 아쉽게도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률은 40%에 달해 선진국에 비해 거의 두 배 가량 높아 전세계에서 지적재산권 보호가 가장 강력한 미국 기업들의 주요 타깃이 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 같은 위협은 바로 우리 코 앞까지 온 상태이다. 즉, 지난해만 해도 국내 중소기업 한 곳이 불법 소프트웨어를 썼다는 혐의로 미국 법원에 제소당하기 직전까지 갔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률을 낮추는 것은 시급한 과제이다. 단순히 저작권 위반 문제를 넘어 불공정경쟁으로 대미 수출 자체가 차단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즉 불법 소프트웨어는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의 암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