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등의 방송 콘텐츠가 TV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웹과 모바일 등 뉴미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독특한 형식의 프로그램이 속속 시청자를 만나는 것이 그 증거다.

올해 제작된 프로그램만 '러브 인 메모리'·'아직 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방과후 복불복' 등 여러 편이다.

구매력을 지닌 젊은 층이 TV에서 온라인 플랫폼으로 소비 성향을 옮겨가는 가운데 웹 기반 콘텐츠는 이들을 붙잡을 수 있는 새로운 '카드'로 주목받는다.

다음 달 2일 첫 방송을 앞둔 '방과 후 복불복'은 '드라마툰'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내세웠다.

정유미·최원영 등이 소속된 연예기획사 판타지오가 제작한 이 작품은 기존 TV 대신 인터넷 포탈 사이트 네이트와 모바일 채널 티스토어 등을 통해 모바일 사용에 익숙한 10-20대를 대상으로 했다.

특히 판타지오 소속 여배우 김소은과 신인 배우 그룹 서프라이즈 멤버 5명이 출연, 제작비 절감과 신인 홍보라는 '1석2조'를 꾀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정정화 PD는 최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소속사 입장에서는 신인 배우를 육성시켜 어떻게 활동을 시킬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하는데, 옛날처럼 방송국을 다니며 홍보하는 시대는 아니지 않나 싶고, 그런 고민이 담긴 기획이 좋아서 함께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지난 2월에는 조윤희·정겨운·최원영 주연의 웹 드라마 '러브 인 메모리', 7월에는 한재석·김민경 주연의 '아직 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가 네이버TV캐스트를 통해 각각 시청자를 만났다.

또 지난 2월에는 유튜브와 KBS월드 채널을 통해 '어 송 포 유 프롬 투피엠(A Song For You From 2PM)'이 방송됐다. 이 프로그램은 전 세계 140여 개 시청자로부터 사연이 쏟아졌으며, 유튜브 조회 수만 150만 건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KBS는 성과에 힘입어 지난 23일 이 프로그램을 '글로벌 리퀘스트쇼 어 송 포 유'라는 이름으로 매주 금요일 오후 6시10분 KBS 2TV에 정규 편성했다.

'…어 송 포 유'의 김형준 PD는 "최근 젊은 층과 글로벌 시청 층은 기존의 TV나 DVD보다 온라인으로 콘텐츠를 소비한다. 이들을 묶어서 공략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떠올린 것이 유튜브였다"라며 "지상파 프로그램을 글로벌 채널이나 유튜브로 재방송하는 개념에서 탈피해 뉴미디어용 프로그램을 거꾸로 지상파에 편성한 첫 사례"라고 의의를 짚었다.

판타지오의 나병준 대표는 "젊은 층은 누구나 휴대전화로 PC를 하나씩 들고 다니는 셈"이라며 "다양한 콘텐츠를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소비하는 시대다. 웹 기반 콘텐츠는 젊은 층,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 앞으로 관련 시장이 더욱 넓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등 해외 시장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이 이미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특히 한 해 동안 전파를 탄 드라마와 코미디 TV 시리즈를 대상으로 수상하는 미국 최대의 TV 프로그램 시상식인 에미상(Emmy Awards) 후보군을 보면 이러한 성향이 두드러진다.

다음 달 22일 개최 예정인 이 시상식에서 ABC, CBS, NBC, 폭스(FOX) 등 주요 지상파 인기 프로그램은 외면당했지만, 온라인 스트리밍 사이트인 '넷플릭스'의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와 '못말리는 패밀리(Arrested Development)' 등이 14개 부문의 후보로 오른 것.

 '못말리는 패밀리'는 지난 2003-2006년 폭스에서 방송되고서 7년 만인 올해 다시 제작돼 '넷플릭스'를 통해 방송된 시트콤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이를 분석한 '2013 에미상 시상식과 TV 시리즈' 보고서에서 "그동안 온라인 서비스는 TV라는 전통적이고 영향력 있는 미디어 플랫폼에 대해 다양한 위협과 기회를 제공해 온 '신흥 세력'이었다"며 "그러나 두 플랫폼 사이의 관계는 긴밀해졌고, 긴장 또한 더해졌다"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콘텐츠 부문 담당자 테드 사란도스는 "모두가 각자의 게임을 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됐다"며 "누구나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할 기회가 된 것"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웹이나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이 극복해야 할 과제도 많다.

해당 프로그램에 따라붙는 광고 수입으로 제작비를 충당하는 일반적인 프로그램과 달리 현재로서는 마땅한 수익 모델이 없다는 점은 가장 큰 취약점이다.

KBS 김형준 PD는 "아직 구체적인 수익 모델이 없어 이를 통해 돈을 벌기는 쉽지 않다"며 "구독자가 많은 유튜브 채널은 광고 수익을 나누어 가질 수 있겠지만, 그 액수가 크지 않다. 프로그램의 인기에 따라 간접 광고(PPL) 정도는 따낼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는 곧 프로그램 제작비가 그만큼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웹 기반 드라마의 제작비는 지상파 미니시리즈의 5분의 1이나 6분의 1 정도의 규모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프로그램의 성패를 좌우하는 스타 출연자의 캐스팅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회당 10-30분의 짧은 길이로 만들어진다. 지상파 미니시리즈가 70여 분, 예능 프로그램이 60분을 넘어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제작사들은 대기업과의 제휴를 통해 이를 극복하기도 한다. '러브 인 메모리'는 네이버 TV캐스트뿐만 아니라 교보생명 페이스북을 통해 방송됐고, '방과 후 복불복'은 SK텔레콤과 손잡고 인터넷 포털인 네이트, IPTV인 Btv, 모바일 채널인 티스토어, 호핀을 통해 서비스됐다.

판타지오의 나병준 대표는 "스타급 배우들이 출연한다면 투자나 PPL 등 제작지원이 더욱 원활하겠지만, 아직은 웹 콘텐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인터넷 포털 사이트나 통신사 등 '맞춤형 콘텐츠'를 요구하는 플랫폼 사업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온라인과 모바일을 중심으로 서비스되는 특성상 대중의 요구를 정확히 짚어내지 못하면 곧바로 외면당한다는 약점이 있다. 시청자는 관심이 없는 콘텐츠를 굳이 온라인에서 찾아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

김형준 PD는 "웹 기반 콘텐츠는 결국 이를 이용하는 계층과 니즈(Needs)가 맞아야 한다"며 "누가 어떠한 콘텐츠 플랫폼에 모여 있는지 파악을 하고, 그 요구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