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14일 국내 공기업 및 가계부채의 증가가 한국 정부신용등급의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톰 번 무디스 부사장은 이날 무디스와 계열사 한국신용평가가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개최한 '제11회 연례 콘퍼런스'에서 글로벌·국내 시장이 한국의 신용등급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하며 이같이 밝혔다.

번 부사장은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우수한 덕분에 'Aa3' 정부신용등급과 '안정적' 등급 전망이 유지되고 있지만, 공기업 부채와 가계부채 증가는 신용등급에 제약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몇 년간 대규모로 투자가 이뤄졌고 세금이 충분하게 조정되지 않은 점 때문에 공기업의 부채가 늘어난 상태"라면서 "한국의 신용등급은 이 같은 우발채무 요소가 고려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정부신용등급이 앞으로 1∼2년 안에 상향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번 부사장은 "한국은 현재 받을 수 있는 신용등급 범위 중 하단에 있다"며 "1∼2년 안에 등급 변동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신용등급에 있어 가장 큰 도전과제가 공공부문 부채의 급증이므로 이 문제가 제대로 관리된다면 "한국의 정부신용등급 상향 조정을 제약하는 조건이 완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로벌 경제위기 충격에 대한 한국 경제의 회복력, 수출 산업의 경쟁력,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 현상유지 등은 한국 정부신용등급에 긍정적이라는 분석이다.

한국 기업들의 신용등급에 대해서는 추후 상향 조정되는 건수보다 하향 조정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콘퍼런스에 참석한 또 다른 연사 크리스 박 무디스 부사장은 "한국 기업의 신용도가 우호적인 거시경제 환경에 힘입어 대체로 안정적 추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그러나 "일부 민간기업은 차입금 비율이 현재 부여받은 신용등급에 비해 높아 (재무건전성이) 취약하다"면서 "신용등급 하향 건수가 상향 건수보다 많을 것이며, 특히 철강과 유통업계 기업들이 이런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에 박 부사장은 삼성전자와 현대차와 같이 '아웃퍼폼'(시장수익률 상회)을 내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신용도가 꾸준히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건설, 해운, 조선, 철강 등 국내 취약업종에 대한 유동성 리스크는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문창호 한신평 기업·그룹평가본부 본부장은 "내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일반 무보증 회사채의 규모가 34조원인데 이 가운데 약 10조3천억원이 취약업종에 쏠려 있어 내년에도 유동성 리스크가 지속될 것"으로 봤다.

특히 문 본부장은 "전기로에 투자한 이후 가시적 성과가 나오지 않는 동부제철[016380]의 경우 수익성 회복이 관건"이라면서 "내년 동부제철에 대해서는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업황 부진을 겪고 있는 증권업은 업체별로 내년 신용도 개선 여부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윤기 한신평 기업·금융평가본부 이사는 "향후 12∼18개월 동안 한국의 은행, 신용카드, 보험 업종의 신용등급은 안정적이지만 증권사들은 현재 진행 중인 구조조정 성과에 따라 업체별로 (신용도 개선 여부가)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오전에 제기된 북한의 연말 4차 핵실험 가능성에 대해 번 부사장은 "지정학적 북한 리스크는 현재 강력한 한미동맹으로 적정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면서 한국의 정부신용등급에 미칠 가능성이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