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택의 몰락은 이미 텔슨전자가 붕괴될 때 예측된 시나리오였다.
이동전화기 시장에서 대기업 삼성과 LG를 상대로 경쟁한다는 자체가 무리수였다.

중소기업 1세대 휴대폰 제조업체중 팬택만 남았던 것도 어찌 보면 팬택의 경영 뒤에는 당시 든든한 배경(?)이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중소기업 톱 메이커였던 텔슨전자가 모토로라를 버리고 노키아를 선택함으로써 몰락의 길을 걸은 것처럼, 팬택도 적당한 선에서 틈새시장만 공략하는 중소기업으로서의 영역을 택했어야 했다.

쉽게 말해 삼성과 LG의 모델을 OEM 생산을 하는 선에서 그쳤다면, 적정선에서의 중소기업 생존의 길을 걸었을 수 있었다.

혹자는 중소기업이라도 이동전화시장에서 살아남아 수 조원을 벌 수 있다고 하는 이들이 간혹 있다. 이는 한국의 통신시장 지배구조를 전혀 모르는 무지의 얘기다.

휴대폰 제품 한 기종에 소요되는 개발비와 짧은 라이프 사이클에서 오는 개발 투자비용을 감당하기에는 중소기업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자금력이다.

더욱이 예전에는 휴대폰 대당 판매 이익률이 높았지만, 점차 낮아진데다 삼성 LG와의 광고 및 홍보경쟁에서 밀리는 대중인지도는 결국 법정관리로 갈 수 밖에 없었다.

텔슨전자의 몰락도 시기가 다를 뿐, 팬택 도산하는 과정과 닮은꼴이다.

김동연 텔슨전자 대표와 박병엽 팬택대표 두 사람 모두 맥슨전자 출신이다. 김대표가 과장, 박대표는 대리로 같은 회사 같은 부서 출신이다.

90년대 초 무선호출기(일명 삐삐)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시절에 나란히 중소 벤처신화 1, 2위를 다투며 휴대폰 시장에 뛰어 들었다.

그러나 당시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이 휴대폰 시장진입은 결국 대기업과 견줘 이길 수 없는 싸움임을 충고했었다. 그 만큼 국내시장에서의 재벌과의 경쟁은 어렵다는 것이다, 만약 제조업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분야라면 해 볼만 하다.

제조업은 자금회전이 잘되지 않으면 어렵다. 특히 휴대폰시장은 더 하다. 제4 이동통신이 말로만 무성할 뿐 설립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자금이다.

그래서 KMI(대표:공종렬)나 IST(대표:양승택)가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이유다.

팬택의 몰락은 협력업체의 잇따른 도산을 몰고 올 수 있다.

팬택의 법정관리는 곧 부품사·협력사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이는 곧 도산 도미노현상이 우려된다.

텔슨전자 때도 수백개 납품업체 및 협력사가 줄줄이 도산했다.

실제로 팬택 협력사는 550여 개 사다. 이 가운데 다수는 이미 전자채권의 연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팬택이 회생하지 못하면 국내 통신 중소업계에 미칠 파장은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경제상황이 안좋은 국내 ICT 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

팬택의 몰락은 국내 휴대폰 시장구조가 삼성 LG 양 구도로 더욱 극심한 경쟁이 예고된다.
소비자 입장에선 불리하다. 그나마 가격하락을 유도했던 팬택이 없어지게 되면, 삼성과 LG의 가격 독점시대를 맞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 텔슨, 팬택, 스텐더드텔레콤 등 5~6개 유망 중소기업들이 뛰어들었던 휴대폰 시장에서 그나마 팬택이 중소기업 최후의 파르티잔(Partisan)이었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무선호출기- CT2(수신전용단말기)- 휴대폰- 스마트폰으로 이어온 20년 통신시장 역사 속에서 한 획을 그었던 텔슨에 이어 팬택의 영광은 이제 뒤로한 채,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우스운 것은 텔슨 팬택보다 형편없이 작았던 퀄컴의 경우, 휴대폰 특허기술 개발로 세계굴지의 회사로 자리 잡은 것을 보면 허망한 느낌이다.

퀄컴을 부자로 만든 나라가 한국이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먹은 격이다.

한국기업이 살 수 있는 생존의 길은, 국산 소프트웨어의 개발로 세계시장 진출밖에 없다는 씁쓸한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