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된 금융실명거래법 시행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어디까지를 ‘불법’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관련 당국의 지침이 없어 금융회사 일선 창구에서는 혼선을 빚고 있다.

최근 은행 담당자들은 불법 차명거래의 범위를 정해달라고 금융당국에 서면 요청하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는 모습이다.

예를 들면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 5000만원 초과 예금을 떼인 금융소비자들이 많았고 정부도 분산을 장려한 마당에 자녀 명의를 이용한 것이 불법 차명 거래인지, 예금자 보호한도까지만 예금을 하고 남는 돈은 자녀 등 가족 명의로 가입하는 것이 불법 목적의 차명거래인지를 가려달라는 요구도 그중 하나다.

정부는 지난 5월28일 개정법안을 공포할 당시‘불법재산 은닉, 자금세탁, 그 밖의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한 차명거래를 금지한다’고 발표했지만 9월15일 입법예고된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에서 ‘그 밖의 탈법행위’의 구체적인 내용을 적시하지 않아 혼선을 자초하고 있다.

절세형 상품들도 비슷한 이유로 혼란을 낳고 있다. 세금우대종합저축의 경우 1000만원 한도로 가입할 수 있기 때문에 세금 혜택을 더 받기 위해 1000만원이 넘는 돈은 가족 등 타인 명의로 가입하는 사람이 많아 이 경우도 차명거래지만 ‘불법’으로 봐야 하는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일각에서는 불법 목적은 아니지만 어쨌든 예금을 분산시킴으로써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에서 빠졌다면 단순히 안전성이나 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 세금 혜택을 받기 위한‘선의의 차명거래’로 볼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반면, 동창회 총무가 회원 회비를 관리하는 경우나 종친회 통장 등은 불법적인 목적이 없다고 봐야 하고, 또 가족 명의로 계좌를 이용한 차명거래라도 세금에 변화가 없다면 탈법 행위가 아니라는 의견이 많다.

이런 경우에 대한 당국의 유권해석도 아직 없어 은행권은 법 시행 전까지는 가이드라인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 조금이라도 애매하면 판단을 보류할 수밖에 없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불법 차명 거래 금지는 돈 많은 부자들의 불법 증여나 지하 경제로 유입되는 자금을 방지하자는 목적이 가장 큰 것인데, 일반 서민들이 힘들여 번돈이 예금자 보호 한도를 초과함으로 인해 예금 보호의 목적으로 가족 명의를 이용하는 것조차도 불법 차명거래로 규정하기에는 문제가 많다고 본다.

정부는 금융거래법 시행이 우선이 아니라 조금 천천히 시행하더라도 명확한 규정을 통해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