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홍천에 있는 산골 마을에서 진행된 ‘f단조 소나타’의 지방 촬영. 주인공 삼 남매, 주성, 춘길, 운보, 순심을 비롯해 많은 배우가 모였다.

워낙 산골 깊숙이 있는 데다 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오래된 집이기에 전기는 물론 물도 잘 나오지 않았다. 다소 불편하기는 했어도 시골이라 좋았던 점도 있었다. 배우 중 한 명이 인근 주민에게서 옥수수를 두둑이 받아온 것이다.

외부에서 전기를 끌어오고 배우 분장과 촬영 장비 세팅이 끝난 뒤 본격적으로 촬영이 시작됐다. 제작 사정상 다양한 장소에서 촬영할 수 없기에, 집안 곳곳에 숨겨진 장소를 최대한 이용해 촬영이 이뤄졌다. 작은 방은 인애의 집, 거실과 앞마당은 춘길의 집으로 설정하여 촬영하는 식이다.

낮에 예정된 장면을 몇 컷 찍고 나니 벌써 주변이 어두워졌다. 낮이 긴 여름이긴 해도 산골 마을에서는 해가 일찍 졌기 때문이다. 조명이 켜지자 주변으로 곤충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큰 곤충들이 많이 보였다.

“네가 그 길을 가믄 세상이 바뀌나?”

“누군가가 그 길을 가믄 바뀔 수도 있지만, 아무도 안 가믄 절대 바뀔 수 없는 깁니더.”

서울에서 내려온 보안과 형사들과 파출소장, 마을청년들이 집으로 피신해있는 요한을 찾는 긴박한 상황. 주성은 요한을 구하기 위해 설득하고 있었다. 불의한 시대에 맞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요한의 신념은 무모한 일인 것처럼 보였다. 물 한 방울은 바위를 뚫을 수 없지만, 그 물방울이 계속 흐른다면 단단한 바위도 뚫리는 법이다. 불과 몇십 년 전, 우리나라의 청년들이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신념’ 때문에 고민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런 그들의 신념이 계속 흘러 현재의 우리가 더 편하게 살아갈 수 있었음에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어느덧 자정이 넘었다. 배우들은 그런 밤샘 촬영에 제법 익숙해 보였다. 촬영장은 귀뚜라미 우는 소리와 조명에 부딪히는 곤충 소리만 날 뿐 조용해졌다.

“주성 오빠, 우리 요한이 좀 살려 주이소! 내 이렇게 빌게예… 살려주이소... 내 뭐든지 다 할게예.”

김노경 감독은 배우들에게 영화에서 절정에 해당하는 중요한 장면을 촬영하기에 앞서 감정을 고조시킬 것을 요구했다. 연기에 몰입한 배우들의 눈가가 금세 촉촉해졌다. 오랫동안 진행된 촬영으로 지칠 법도 했지만, 배우들은 장면의 중요성을 알기에 끝까지 집중력을 놓지 않았다.

새벽 4시가 넘어서야 촬영이 끝났다. 예정되었던 장면 중 일부는 시간관계상 다음에 촬영하기로 했다. 이제 절반 정도 진행된 촬영 일정. 김 감독은 하나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앞으로 촬영뿐만 아니라 편집, 시사회, 극장 확보, 제작비 충당을 위한 펀딩 등 많은 난관이 남았다고 말했다.

‘f단조 소나타' 제작팀과 동행하다 보니 그들의 움직임이 요한의 신념과 닮았다고 느꼈다. 비록 무모해 보일지 모르는 작은 물방울이지만 계속 흐르기만 하면 그 단단한 난관들도 언젠가는 뚫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